일상/일기

21. 11. 24 충록이에게 쓰는 편지

Solation 2021. 11. 24.

충록아 너가 떠나갔다는 얘기를 들은 지도 벌써 일 년 하고도 반년이 지났어. 

 

나는 도저히, 도저히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아.

 

우리가 얼굴을 자주 보고, 꾸준히 정기적으로 만나지는 않았으니까.

 

우리는 얼굴보단 오히려 게임에서 자주 만났지.

 

그래서.. 잠시 바쁜가 보다, 일이 있나 보다 정도로 느껴져 나에게는.

 

그리고 실감이 나지 않는 것은 너를 제 때 보내지 못했기 때문이겠지. 

우리가 너가 사라졌다는 얘기를 들은 것은 이미 너를 떠나보내는 3일간의 장례가 끝나고 나서였지.

 

친구들의 상담을 많이 해주고, 얘기를 들어준다고 생각하는 나도 너에게는 정말 많은 것을 의지 했었지.

 

사람마다 강인한 부분이 있고, 내가 연약한 부분, 많이 경험하지 못한 부분들에 너는 강했으니까.

 

그렇기에 너가 그동안 힘들었다는 것을 알지도 못했고, 너에게 약한 부분들이 있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어.

 

친구들과 너의 납골당을 찾아갔지만. 나는 거기에 너가 있다고는 생각하진 않았어.

아니 오히려 너가 미웠지.

 

친구가 아프고 힘들어했다는 것을 몰랐다는 것이.

이야기 한번 들어줄 시간을 가져주지 못했다는 것이.

 

너가 무슨 아픔으로 힘들어했는지, 어떤 일로 고통을 받았는지 알았다면.

너를 떠나보낼 수 있을지 몰라

 

하지만 내 안의 너는 여전히 나와 같이 게임하고 웃고 시간을 보낸 너라서. 너는 그저 내가 모르는 곳에서 너답게 살아가고 있으리라 느껴진다. 

 

이 친구야 너가 많이 보고 싶다. 

납골당 앞에서 너라고 주장하는 사진 앞에서 그 안에 들어있는 게임들을 보며 웃었다. 

가족들도 너가 게임 좋아하는 거 알고 있구나. 그래서 너가 진짜 좋아하는 게임들을 넣어 주었구나.

 

그거 아냐? 너랑 같이 기다리고, 너랑 같이 얘기 나눴던 게임들이 나온다고, 나올 거라고 할 때마다 너가 생각나는 거?  

 

나는 절대로 일찍 죽고 싶지 않다. 친구야. 살기 힘들어도.

이렇게 재밌는 게임들이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너에게 얘기를 듣지 못했다고 내 동생한테 말하니까 내 동생은 그렇게 말하더라, 오히려 모르는 게 좋을 수 도 있다고.

내 동생은 고등학교 때 친구를 떠나보냈는데, 어느 정도 힘든 걸 알고 있다가 보낸 게 마음에 많이 남았다더라. 

 

내 고등학교 생활엔 너가 남아있고

내 친구들의 마음 안에도 너가 남아있고

 

내가 살아온 공간에도 너가 남아있어.

 

맛집을 좋아하고 연애도 오래 한 너는 나에겐 연애 선생님이었지.

내가 먹었던 음식, 그리고 장소들을 돌아다보며, 정말 너가 알려준 것들 너가 추천한 곳들 그런 곳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고 놀란지 아니.

 

연애한 지 5천 일을 넘겼다며 우리한테 말하던 너, 그런 너를 보고 요괴라고 놀렸던나. 

 

우리 중에 너의 여자 친구 분을 본 적은 한 명도 없었지. 너를 10년 넘게 보고 너를 잃은 그분의 마음은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우리 모두가 너가 우리에게 소개해주는 게 부끄러워서 내키지 않아 하는 걸 알고 그리 그분을 소개해주는 걸 부탁하지 않았지. 

 

그분 때문일까 생각한 적도 있지만. 그런 아픈 이유에 대해 생각하는 건 힘이 들어. 

그분을 미워하고 싶지 않다. 

 

세상에 수많은 너가 존재해. 

내가 시험보고 너희 집 근처라 잠깐 들렸던 옛날 치킨집도,

너가 좋아하던 맥주집도. 

너랑 가던 피시방도. 

너가 추천한 음식점도. 

 

그 안에 너가 있고 이젠 너가 없다. 

내가 게임을 같이 하고 싶은 너도 없고

내가 알게 된 맛집을 추천하고 싶은 너도 없고

친구들 사이에서 무게 잡고 핀잔주던 너가 없어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지만, 시간이 지나며 내 안에 다른 것들이 차오르면 너는 점점 사라지는 거 아니냐? 

아 너 약 오르라고 보란 듯이 재밌게 살 거야.

 

나는 아직 너를 떠나보내지 않았다. 

너가 생각난다고 마음이 아프지도 않고 

그 순간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너가 그랬었다고 얘기해, 이렇게 말했다고, 이렇게 있었다고.

그러면서 웃지. 이해가 안 가거든. 이놈 자식아. 

 

1주년에 다시 납골당을 갈까 싶었지만. 가지 못했다 친구야

너를 추억하며 다시 갈까 생각했는데, 아직은 너를 추억으로 둘 시간은 안된 것 같다. 

너의 가족분들을 만나는 것도 무섭기도 해. 

내가 실감하게 될까 봐 두렵다.

 

다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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