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일기

깨진 유리조각들

Solation 2022. 9. 6.

깨진 유리조각들

연락 두절

오늘 동생이 늦게 집에 왔다.

태풍 힌남노가 올라와서 비도 바람도 많이 부는데

어머니가 동생이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카톡이든 전화든 연락해보라고 했다.

동생은 어머니와 사이가 종종 나빠서 어머니의 전화를 안 받는 경우가 있다.

하던 일을 정리하고 동생에게 전화를 하니

처음 듣는 목소리가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받은 분은 버스에서 동생의 전화를 주웠다고 했다. 

여차저차 사정을 말한 뒤 그분이 버스 기사님께 핸드폰을 맡기는 것으로 얘기가 되었다.

 

동생이 핸드폰을 잃어버린 것이 확인되었으니 이제 남은 건 동생이 어떻게 되었냐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었는데 동생의 대학교 친구 연락처도 하나 알고 있다는 게 없다는 게 정말 마음이 아팠다.

동생은 술을 과하게 마셔서 몇 번 걱정시킨 적이 있어서

이 추위에 어디서 쓰러진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어떻게 엄마가 알고 있는 동생의 선배 분께 문자도 남겨도 보고

바람이 얼마나 부는지, 비는 얼마나 오는지 나왔다 들어와 보기도 했다.

 


복귀

새벽 3시가 넘었으면 정말 많이 걱정했을 텐데

정말 다행히 2시쯤에 집에 도착했다.

 

엄마는 늘 이렇게 늦을 때 사람의 마음 변화 시간이 있다고 하셨다.

처음에는 연락이 안 돼서 화가 나는 게 첫 번째

그다음에는 무슨 일이라도 생기진 않았을지 걱정되는 게 두 번째

그리고 기다리다 못해 애가 타는 게 세 번째라고 하셨다. 

 

늘 화를 내는 건 그나마 상태가 좋은 거라고 하셨다.

화라도 내게 늦게 돌아갈 것 같으면 연락은 꼭 하라고 하셨다.

나도 한참을 혼나다가 최근에야 그나마 연락은 할 수 있게 되었다.

 

동생은 나와 어머니를 걱정하게 만드는 단계에 와 있었다.

어머니는 주무실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안절부절못하고 돌아다니셨고

핸드폰을 주우셨다는 분이 언제 받으셨는지 연락처는 어디인지 사는 곳은 어디인지 어떤 버스를 탔는지 물어보셨다.

어머니의 말을 들으며 왜 이것들을 못 물어봤을까 생각하며

그분의 늦은 퇴근을 방해했다.

 

동생이 돌아오자 사정을 물어봤다.

막치 시간보다 더 늦게 출발했고

핸드폰을 잃어버려서 늦게 출발했음을 알리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 어디 다친 일 없고 쓰러진데 없이 돌아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속에 담아 두었던 얘기

동생이 취한 김에 속에 담아두었던 얘기를 한다고 했다.

나는 안 그래도 어머니가 쓰러지실까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는데

동생이 의미심장한 말을 하자 긴장되었다.

 

나는 처음에 마음이 공허하다고 들어서

조금은 중2병이거나 술 먹고 가슴이 허한 줄 알았다.

나중에 들어보니 공황이 있다고 한다.

엘리베이터 같은 곳에서 숨이 막힌다고 했다.

다행히 방에서는 숨이 막히지 않는다고 한다.

환각도 보여서 무섭다고 한다.

애가 어쩌다 이렇게까지 망가졌을까

얼마나 오랫동안 아픔을 가지고 있었을까

영일이 말로는 몇 년은 되었다고 한다.

 

나는 잊고 있었지만 우리 집 분위기가 마냥 편안한 분위기가 아니긴 하다.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가 안 좋기도 하고

어머니가 몸 상태가 좋은 편은 아니시다.

어머니가 정신적으로 힘드신 편이라

그 사이에서 동생은 스트레스를 계속 받아온 모양이다.

나도 예전에 같은 스트레스를 받긴 했는데

어느 순간에 그냥 잊고 받아들이고 살게 된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지금은 절대 동생이 이 말을 할 타이밍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런 식으로 어머니와 다툼이 있을 경우

어머니는 스스로를 굉장히 많이 자책하신다.

본인 잘못이라고, 내 탓이라고 미안하다고

어머니가 그런 생각을 하지 않게 그 말을 하지 않게 우리는 하고 싶은 말도 참는 일이 많긴 했다.

나도 어릴 때는 자신의 목숨을 볼모로 삼는 어머님이 너무 미웠고 속에서 울분이 터졌다.

동생도 아마 그게 싫었고 화난 것 같았다.

어머님이 미안하다고 하실 때, 자기는 대화를 하고 싶다고 계속 말했다.

 

동생이 그동안 쌓아왔던 것은 이해하지만

지금 말하는 건 절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일단 본인이 취해있는 상태고

어머니는 몸 상태도 안 좋고 아버지와 조금 다투고, 동생 걱정하느라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내가 동생에게 말했다.

지금은 타이밍은 아니고 상처받은 사람을 몰아세우는 건 대화가 아니라고

너는 무슨 말을 듣고 싶은 거냐고

일단 씻고 오라고 말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상황은 쉬이 진정되지 않았다.

동생은 속에 쌓아 왔던 것을 터트렸고 울고 본인이 상처받았음을 표현했다. 

그걸 보고 있던 나는 둘 다 상처 입은 유리조각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도 공생도 부서지고 상처받아서

그 어느 쪽도 멀쩡하지 않았다.

어느 쪽을 신경 써주는 말을 하면 다른 한쪽이 상처받는다.

다른 한쪽을 챙겨주면 다른 한쪽이 스스로 부서진다.

나는 이쪽도 저쪽도 챙겨줄 수 없었다.

 

둘 다 부서진 유리조각이라면 나에게는 어머니가 더 소중했다.

동생에게 씻고 들어가고

낼 맨 정신일 때 말하라고 지금은 아니라고 말했다.

동생은 굉장히 상처받고 속상한 표정을 했다.

어머니는 상처받은 동생의 손을 붙잡고 아니라고 이야기하라고 말했다.

왜.. 스스로를 후벼 파는 얘기를 하실까...

 

동생은 조금 더 이야기했다.

나는 동생의 아픔이 공감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내가 본 동생은 충분히 자기 취미도 잘하고 있고 이것저것 자신을 위해 사기도 하는 둥

본인에게 충실히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술 먹고 들어왔기 때문에 술주정으로밖에 안 보였다. 

물론... 그건 자신의 상처를 덮기 위한 행동일 수도 있다.

 

그래서 계속 어머니를 상처 주는 말을 하는 동생을 보며 짜증이 났다.

그리고 그만 말하고 들어가라고 짜증을 냈다. 

이건 정말 잘못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짜증 내듯이 말하면서 그만하라고 할 때

그만하려고 하기도 하고 울분을 참기도 하는 모습에 마음이 아프기도 했지만

동생이 어머니를 상처 주는 걸 두고 불 순 없었다.

 

내가 아프지 않다고 동생의 아픔을 가볍게 여기고 있는 건 아닐까 

그 상황에서 내가 짜증을 냈다는 게

동생에게 더욱더 큰 상처를 주지 않았을까???

 

안 그래도 동생은 말을 하고 싶은데 말을 하지 못하는데에서 압박감을 많이 받았는데 말이다.

 

나도 그 숨이 막힐 듯한 분노와 울분을 느껴본 입장에서 내가 생각한 해결책을 말한다고 도움이 될까???

정말 나와 똑같은 상황일까??? 전혀 아닐 텐데

내가 한 태도는 정말 동생의 입장에선 엿같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조금은 진정되어 동생도 어머니도 잠에 들었다.

내일 좀 동생이랑 얘기를 해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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