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일기

두상 모델 알바 - 220730

Solation 2022. 8. 1.

다음주에 약속도 있고 이번주에 여행도 다녀와서

돈도 거의 다 떨어져서 슬슬 간단한 알바라도 해야하던 참이었다. 

적당한 알바가 없나 찾아보던 중

눈길을 끄는 알바가 하나 있었다. 

그것은 ' 두상 알바' 여자친구가 미대 조소과를 나와서 간혹가다 모델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말로만 듣던 알바를 진짜 구한다니 눈길이 갔다. 

 

혹여나 하는 생각에 얼굴 전면 사진을 보내며 신청해 보았고 금방 응답이 왔다.

 


두상이 잘 보이도록 머리를 넘기고 오고 목도 드러날 수 있도록 면티를 입고 와달라고 부탁 받았다.

두근두근한 마음을 가지고 늦지 않도록 조금 일찍 출발했다. 

도착하자 생각보다 좁은 학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디에 앉아야 할지 고민하며 두리번 거리고 있는데 왼쪽에

사무실처럼 보이는 곳에 앉아 있는 남성이 보였다.

알바라고 말하며 어디에 가야하는지를 물어 보았는데 

그 남성분은 자기도 알바라면서 자신한테 물어보지 말라고 까칠하게 말하셨다.

 

이런 불친절은 오랜만이라 심장이 두근두근거렸다.

그치 사람이 사람에게 친절할 필요는 없지

저 사람도 시간이 뺐기는 기분이라 불편했나 보다. 

나도 오랫만에 내가 쓸데없는 질문을 한다는걸 다시 자각하고

조심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시간이 되었고 알바가 시작되었다. 

두 그룹의 학생들의 원이 있었고 그 가운대에 의자가 하나 있었다.

나와 학생들의 배치

이런 식으로 나를 학생들이 둘러쌓은 형태였다.

나는 5분마다 매번 다른 학생을 바라보면 되었다. 

내 의자는 방향을 바꿀 수 있도록 돌아 갈 수 있는 회전 의자였다.

50분 모델 10분 쉬는지간이었는데

한사람 당 5분씩 바라보니까

9명이라 한바퀴 돌고 한명을 더 바라보면 쉬는 시간이었다.

 


내 머리가 만들어지는 걸 보는 건 꽤나 묘한 기분이었다.

학생마다 기초를 만드는 과정이 다 달랐다.

누구는 세로로 덩어리를 뭉치기도 했고

누구는 목부터 차근차근 쌓아가기도 하고 

툭툭 한점씩 붙여가는 친구도 있었다.

 

안경을 벗어야 했던 게 아쉬웠는데

머리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자세히 보지 못해 아쉬웠다.

안경을 벗고나니 초점을 잡기가 어려워서

눈이 좀 더 피로해지는 감이 있었다.

내가 렌즈가 있었다면 렌즈를 끼고 싶었다.

 

학생들이 내 머리를 만드는 걸 보니 

왜 신이 사람을 흙으로 빚었다고 했는지 알 수 있었다.

학생들이 손으로 흙을 붙이는 대로, 다듬는 대로

사람의 머리가, 어깨가, 턱이 형태를 갖춰갔다.

 

안경을 벗어 잘 안보이는 눈으로 학생들이 나를 잘 관찰할 수 있도록 도왔다.

알바를 하기 전에 내가 주인공이라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나는 그저 정물에 불과했다.

나는 그들에게 여섯시간 동안 꾸준한 자세와 표정을 제공해야했다.

그들이 만든 머리카락과 맞지 않을까봐 쉬는시간에도 앉아서 졸았다. 

 

태어나서 이만큼 사람들이나를 관심있게 바라보는건 처음인 것 같다. 

 


학원 원장님인 듯한 분은 대체로 쉬고 계시다가

1~2시간마다 한번씩 아이들을 봐주셨는데

그 말 한마디 한마디가 금과 갖고 다정해서 나도 귀담아 들었다.

 

여러 말들을 해주셨는데 기억에 남는 말은 다음과 같다.

보려고 하지 않으면 볼 수 없어

보려고 해야만 보이는 게 있는거야

끝까지 보려고 해봐

나에게도 뭔가 와 닿는 말이었다. 

하려고 해야만 볼 수 있고

그냥저냥 하면 안된다는 말씀으로 들렸다. 

 

다른 얘기로는 모델을 바라보는 것에 대한 얘기들이 있었다. 

모델이 정면에 왔을 떄 봐야하는 것들 

형태는 측면에 있을 때 잡아줘야 한다는 것

모델은 눈이 크지 않은데 학생은 눈을 크게 잡았다고 하는 것 (하하..)

모델은 광대 말고도 광골이라는 부위가 있어서 표현해줘야 한다는 것

그리고 윗입술이 두터운 편이라 두께감도 주고 표현해야 한다고 얘기하셨다. 

 

그러한 말들을 들으면서

학생들을 봐주시는 걸 가만히 지켜봤는데

지도해주시면서 톡톡 두드릴 때마다

두상이 바뀌어가는 걸 보는 재미가 있었다. 

 


이 알바의 단점은 몸이 굉장히 편하지만

매우 졸리다.

졸음을 참는 게 제일 어려웠다.

여자 친구 말로는 이어폰을 착용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했는데 

이번 알바에서는 그런 틈은 없었다.

 

처음 5명까지의 학생은 괜찮은데 7~8번째 학생을 바라볼 때 

많이 괴로웠다.(졸려서)

 

그래도 나를 열정적으로 바라봐주고 탐구해주는 학생과 눈을 마주칠때는

나도 열정이 생겨서 마주보게 되었다. 

 

가만히 있으면서 내가 돌아가서 해야할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써야할 글들 해야하는 운동

알바를 하면서 생각났던 것들

 

돈 벌기가 어렵다는 생각

내 시간을 들여서 받은 돈으로 뭐하지??

 

그러다 문득 들어가는 

내 시간도 아깝지만

이 시간이 나를 만드는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돌아가서 내 시간을 정말 아껴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돈도 아껴쓰고 

 

살면서 누가 내 머리를 이렇게 만들어줄 일이

몇번이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면서

힘이 났다. 

 

두상모델을 하면서

옛날 조각상들이 왜 죄다 뚱한 표정인지 

깨닫게 되었다.

그게 오랫동안 지을수 있는 표정들 중 가장 편한 표정이기 떄문!

 

모델을 하면서 이생각 저생각을 했는데

옛날에 만났던 스님 생각이 왜 났는지 모르겠다. 

 


알바 쉬는 시간에 완성 후에 사진을 좀 찍어도 되냐고 물어보았다.

학원 이름만 나오지 않는다면 괜찮다고 하셨다.

 

완성된 두상들이다.

두상 1

나름대로 닮았다고 생각하는 두상이다. 

눈 깊이와 코 크기 그리고 입술이 닮았다고 생각한다.

 

뚱한 표정의 두상

뚱한 표정의 두상

내가 이런 표정을 지었던가

간신히 졸음을 쫓는 표저어인걸까

안 닮았어!

두상3 야비한 두상

굉장히 야미해보이는 나

얼굴이 오돌토돌하다. 물은 왜 뿌리는 걸까

두상 4

머리는 완성이 안 됐지만

묘하게 내 눈 주변이 표현이 잘 됐다고 생각한다.

선생님께서 봐주면서 비슷하게 완성이 되는게 아닐까 싶었지만

각기 다른 두상이 나온 걸 보면 신기하다.

 

두상 5 어머니와 여자친구의 모스트

엄마와 여자친구는 이 두상이 제일 많이 닮았다고 한다.

나는 잘 모르겠지만 느낌이 있다고 한다.

쇄골이 표현된 것을 보고 어머니가 상의를 벗었냐고 물어보았는데 상의를 벗진 않았다.

 

두상 6 뽀얀 나

뭔가 피부가 뽀얀 두상이다. 

어깨는 안 닮은 것 같다. 

 

두상 7 굶은듯한 나

뭔가 굶은 듯한 두상이다. 

무언가를 갈구하고 있는듯하기도 하다. 

눈동자가 맞지 않아 조금 무섭다.

나는 이게 제일 닮은 것 같다.

 

두상 8 못되게 생긴 나

굉장히 못되게 생긴 내가 탄생했다. 

위에 친구보다 더 굶은 것 같고 옹졸해 보인다.

남이 보는 나는 참 묘한 것 같다. 

 


신선하고 독특한 경험이었다.

몸이 힘들지 않지만 두번 하긴 어려운 알바인 것 같다.

생각할 게 많다면 추천하는 알바다.

혹은 가만히 있는 걸 좋아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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