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데이트

연애 0일차

Solation 2023. 8. 2.


연애 전의 이야기도 남겨둔다.
기억이 스러지기 전에 추억이 흩어지기 전에 기억나는 만큼 그러모아 둔다.

시작은 동아리 후배 은형이의 전시였던 것 같다.
은형이의 고등학교 동창이었던 그녀는 시험 준비 때문에 웬만하면 약속에 나오지 않지만
절친의 전시라 그런지 들리게 되었다.
전시를 보고 난 후 그녀는 뜨터디 사람들과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갔고
나는 뒤늦게 재훈이와 함께 모임에 참석했다.

그리고 그날 그녀를 보면서 그냥 기분이 좋았다.
그녀는 내 첫사랑과 느낌이 닮았는데
나는 맥주집에서 뜨개질을 하면서 멀리서 그녀를 보며
맞아 난 이런 사람을 좋아했지, 나는 이런 분을 좋아하는구나 생각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시험준비하신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소개해달라고 할 생각도 없었고 만나봐야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냥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이런 사람이구나 생각하며 기분이 좋았을 뿐이다

그날 집에 돌아가는 길이 겹쳐 기분이 좋았으나
쑥맥이었던 나는  일부로 더 오래 같이 있을 생각도 하지 않고
평소처럼 효창공원에서 갈아탔다.
원래 공덕에서 갈아탄다고 그녀에게 말했는데
생각해 보니 평소 환승하는 곳은 효창공원이었고, 공덕역은 환승구간이 너무 길어서 잘 가지 않았다.
그때 그녀는 살짝 어이가 없었다고 한다.

그 만남이 있고 난 후 은형이와 술을 먹을 일이 있었는데
나는 그 자리에서 은형이에게 그분이 내 첫사랑과 닮아서 마음이 훈훈했었다고 얘기를 했다.
농담이 아니라 이때는 소개해달라고 할 생각도, 흑심도 전혀 없었다. 시험 준비를 하는 사람을 방해하는 거 그런 거는 결코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웬걸 은형.... 이....... 사람이 그걸 홀랑 상대방한테 가서 말해버렸다.
내가 얼마나 당황했고, 은형이가 미웠을지....
상상도 못 할 것이다.
나는 뭔가 해보기도 전에 상대방에게 실례를 저질러버렸고(본의 아니게)
보통은 첫사랑 닮았다고 하면 싫어하니... 뭔가 해보기도 전에 -를 받고 시작했다.
그분이 시험 합격하고 나서야 소개해달라고 할까 생각했던 나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 아닐 수가 없다.
화나는 마음을 꾹 눌러 닮은 채로 은형이한테 왜 그랬냐고 했는데 반응이 얘기하면 안 되는  거였어?? 였던 거 같다. 아으.... 그래서 상대방 반응은 어땠는지 물으니  기억이 안 난다고 해서 더 부아가 치밀었던 것 같다.
이렇게 된 김에 소개해주면 되잖아! 하고 그녀가 말했고 그 이후로 소개해주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도 자기가 이어줬다고 생각하다니... 괘씸하다 괘씸해

그 이후에 내가 하모니카 공연을 할 일이 있었고,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던 나는 뜨터디 사람들 다 초대하는 척하면서
그녀도 같이 초대했다. 내가 가기에도 많이 먼 곳이었는데
흔쾌히 와주셔서 나도 놀랐다.
나중에 듣기로는 그녀도 내가 마음이 있다는 걸 알고 온 상태였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너무 사람을 많이 초대하기도 했고
그렇게 사람 다 부른 자리에서 그녀에게만 속 보이는 행동을 내가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대로 공연만 보여드리고 집으로 돌려보내드렸다. 사실 동아리 사람들을 25명 가까이 불렀고, 공연날은 원래 정신이 없어서 누군가를 챙기고 고백하고 그럴 여유는 전혀 없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공연날 고백이라던지 하는 건 별로라고 생각한다.

그 이후에도 딱히 연락은 없었다. 공연이 11월이었던 것 같은데 그 사이에 뜨터디를 꾸준히 나갔다.
민지는 자신에게 잘 보이면 그녀랑 약속을 잡아주겠다고 했다.
지금 그녀가 일본에 여행가 있고 곧 생일이기도 해서 정신없을 거라고 했다.

이미 첫사랑얘기까지 가서 난 잃을게 거의 없었다.
그런데 2달이 지나도 민지가 내가 사준 마카롱을 받아먹기만 할 뿐 그녀와 연락을 했다는 소리조차 들을 수가 없었다.
진짜... 돌려서 거절받은 걸까... 나를 해주기 싫은 걸까... 별별 생각이 많았다.

그러던 와중 혹시 내가 입은 옷이 문제였을까....????
평소에 안 꾸미고 다니고 옷도 그냥저냥 입어서 소개해줄 마음이 안 든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작정하고 꾸미고 뜨터디에 나갔다.

그게 먹혔는지 다들 뭐 하고 왔냐고 소개팅이라도 갔냐고나에게 말했고 나는 아니라고 말했다.
소개팅 얘기를 듣더니 민지는 안도니다고 그녀랑 봐야지! 하는데
내가 이 악물고 응 그래서 언제 소개시켜 주나 궁금해하던 참이야 라고 말했다.
그러더니 민지는 깜박 잊었던지 바로 연락을 돌리더니 약속을 잡아주었다.
길었던 것에 비해빠른 일처리였다. 허허허
진작에 꾸미고 올걸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 나서 건대에서 만났다.
우리는 어느 카페에서 얘기를 했는데 2층에 구석진 자리에 사람들을 등지고 앉아서
진짜 온갖 이야기를 했다.
내가 갖고 있는 썰의 60%는 얘기한 것 같다.
그녀가 정말 즐겁게 들어줘서 더 신났다.
나는 전날에 너무 떨려서 잠을 거의 ㅣ못 잔 상태였다. 3시간 정도 잤나....???
그렇게 자고 다음날이 되니 소리에 굉장히 예민해져 있었다.

이 얘기를 왜 하냐면 다음으로 규카츠에 갔는데 내 등 뒤에 음식을 배달하는 엘리베이터 소리에 진짜 18번은 깜짝깜짝 놀랐던 것 같다.
다행히 이상하게 보시지 않고 귀여워하고 재밌어해 주셔서 마음 편히 놀랄 수 있었다.

규카츠 추천은 충록이에게 받았는데
소개팅을 하는 동안 먹는데 신경 쓰지 ㅇ낳고 편하게 먹을 수 있고, 옷에 흘리지 않는 음식이라 데이트할 때 좋다고 했다.
저녁식사를 하고 건대입구 역 근처에 있는 엔제리너스에 갔다.
그녀가 종종 오는 곳이라고 했다. 아늑한 지하 공간에서 서로의 꿈과 목표에 대한 얘기를 했다.
그때 나는 건실적인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목표가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지금 보면 이룬 건... 거의 없지만
건실한 사람이었으면 했다.
그런 얘기들도 정말 진지하고 즐겁게 들어줘서 너무 고마웠다.
15분 같았던 2시간을 보낸 후 헤어졌다.

헤어지고 나서 1주일 뒤 나는 영화를 같이 보자고 그녀에게 데이트 신청을 했다. 이성과 영화관 데이트를 하는 건 나의 로망 중 하나였다.
2주 뒤에 보기로 하고 진짜 떨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1주일을 보냈다.
그리고 동아리 후배 경태의 밥을 사주다가
거절의 문자를 받게 되었다.
경태에게 양해를 구한 뒤 자리를 일찍 파하고 한 시간 후에 답변을 드렸다.

시험 때문에 바쁘신 거, 연애가 어렵다는 거 이해한다. 나도 방해가 되고 싶지 않고 방해가 될 까봐 걱정이었다.
그러나 혹시  얼굴을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으니까 시간이 된다면 불편하지 않으시다면
보기로 한 날에는 보는 게 어떠냐고 물었고
그건.... 괜찮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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